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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성비' 꼬리표 뗀 기아, 미국을 삼킨 괴물 신화의 비밀
    국내주식 2025. 10. 12. 17:36

    "기아가 또 해냈습니다."

    2025년 9월, 기아(000270.KS)의 미국 판매 실적이 발표되자 시장은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년 대비 11% 급증한 6만 5천 대. 이는 역대 9월 최고 기록이며, 3분기 전체 판매량 역시 9% 상승하며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연초부터 이어진 상승세는 무려 9%에 가깝습니다.

    기아 미국시장 판매량
    기아의 북미 성공 신화를 이끈 주역, 텔루라이드가 2022년 11월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기아'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 기아가 맞나요? 한때 미국 시장에서 '저렴한 차'라는 꼬리표를 달고 힘겹게 경쟁하던 기아가 어떻게 미국 중산층의 차고를 점령하고, 나아가 가장 탐나는 브랜드 중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단순한 판매량 증가를 넘어, 기아의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게임의 법칙'을 한국 투자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겠습니다.

     


    1. '값싼 차'의 반란: 10년 보증으로 편견의 벽을 허물다

    모든 성공 스토리에는 역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1993년, 기아는 Sephia와 Sportage를 앞세워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야심 차게 발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기아는 그저 '품질을 신뢰할 수 없는 값싼 차'일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아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던집니다. 바로 업계 최초의 '10년/10만 마일 파워트레인 보증'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단순히 긴 보증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제품에 이토록 자신이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품던 소비자들의 마음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파격적인 정책은 기아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조금씩 걷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투자자 인사이트: 기아의 초기 전략은 '신뢰'라는 무형자산 구축에 모든 것을 걸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 상승에 베팅한 것으로, 현재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지키는 뚝심이 어떻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2. 게임 체인저 '텔루라이드', 미국 중산층의 차고를 점령하다

    "Telluride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재정의한 엄청난 전환점이었습니다." - 에릭 왓슨, 기아 미국 판매 담당 부사장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온 기아에게 폭발적인 성장을 안겨준 '게임 체인저'가 있었으니, 바로 대형 SUV Telluride입니다. 2019년 출시된 Telluride는 미국 시장을 그야말로 뒤흔들었습니다. 3만 7천 달러 이하에서 시작하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급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디자인, 고급스러운 실내, 그리고 강력한 주행 성능까지. 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담아낸 '완벽한 패키지'였습니다.

     

    Telluride의 성공은 단순히 차 한 대를 많이 판 것을 넘어섭니다. 이전까지 기아 매장을 찾지 않던 중산층 및 상위 중산층 소비자들이 Telluride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차고 점유율(Share of Garage)'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Telluride에 만족한 고객이 가족의 두 번째 차로 Sorento나 K4 같은 다른 기아 모델을 선택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Telluride는 기아 브랜드를 '저가'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입니다.

    💡투자자 인사이트: Telluride의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입니다. 이는 기아가 단순히 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특정 시장의 문화와 소비 심리를 꿰뚫어 보는 '마켓 리더'로 진화했음을 의미합니다. 투자자들은 향후 기아가 내놓을 신차, 특히 북미 시장을 겨냥한 EV 픽업트럭 같은 모델이 Telluride의 성공 공식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합니다.


    3. EV9과 브랜드 리뉴얼: 미래를 향한 담대한 투자

    Telluride가 현재의 성공을 이끌었다면, 기아는 EV9과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미래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2020년대 초, 기아는 로고와 브랜드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고, 전시장 시설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가성비'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혁신과 디자인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전기화된 Telluride'로 불리는 EV9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디자인과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춘 EV9은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에 안착하며 기아의 전기차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아는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동일한 생산 라인에서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급변하는 시장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까지 확보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배터리 미국공장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따라 미승인 근로자 단속이 이뤄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모습입니다.

     

    하지만 모든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일부 구형 모델의 도난 취약점을 노린 '기아 챌린지'는 2억 달러 규모의 합의금 지출로 이어졌고, 비노조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는 전략은 잠재적인 노사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투자자 인사이트: 기아의 미래는 '전기차'와 '생산 유연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달려있습니다. 투자자들은 EV9, EV6를 잇는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의 성공 여부와 함께, 관세 및 노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미국 현지 생산 전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리스크 관리 능력 또한 기업의 중요한 펀더멘털입니다.


    기아의 질주,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값싼 차'라는 편견을 '10년 보증'으로 깨부수고, 'Telluride'라는 걸작으로 미국 중산층의 마음을 훔쳤으며, 이제 '전기차'로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기아. 그들의 성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치밀한 전략과 담대한 투자의 결실입니다.

     

    기아는 이제 연간 322만 대 판매, 미국 시장 점유율 6% 돌파라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형 Telluride와 새로운 EV 픽업트럭이 그 야심 찬 계획의 선봉에 설 것입니다.

    기아 EV6 GT 뉴욕오토쇼
    기아의 고성능 전기차 모델인 EV6 GT가 2024 뉴욕 국제 오토쇼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투자자라면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이제는 단순히 판매량 숫자에 환호할 때가 아닙니다.

    ▲신형 Telluride가 전작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북미 시장에 출시될 EV 픽업트럭이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 내 생산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냉철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기아의 진정한 시험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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